아날로그 녹음의 역사 [2]

작성자
UHDmusic
작성일
09.03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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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evelopment of electrical recording


1920년 첫 라디오 방송이 나오고, 음악 등이 사람들에게 무료로 제공되는 시점에 개발자들은 축음기에 큰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에 가장 큰 기여를 하고 변화를 가져온 곳이 ‘Bell Laboratories’ 입니다. 그들의 연구는 놀라울 정도로 현대 녹음 기술과 장비의 틀을 다지는 역할도 하였습니다.



‘Bell Laboratories’ 는 그 당시 미국의 통신 회사였던 ‘American Telephone & Telegragh (AT&T)’ 의 연구부서 였으며, 기존에 AT&T에서 연구를 담당하던 ‘Western Electric’ 부서와 합병하며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Bell Laboratoires’와 ‘Western Electric’은 1914년부터 장거리 통신 신호 전달에 관한 연구를 해오며, 이는 이후 ‘Westrex electrical recording system’ 탄생의 기초가 되기도 합니다. ‘Bell Laboratories’는 기존의 이론과 장비들을 개선 혹은 개량하거나 새로운 장비들을 발명하며 통신 수단 뿐만 아니라 녹음과 재생의 큰 발전을 이뤄냅니다


 


Edward C. Wente of Bell Laboratories holding his Condenser Microphone 


‘Bell Laboratories’에서 처음으로 개발된 것은 오늘날 녹음에 가장 많이 사용된다고 말할 수 있는 컨덴서 마이크 (Condenser Microphone)입니다. 압력식 진공관 튜브 앰프를 사용하여 작은 레벨의 신호를 증폭시키는 방식으로 인해 실용적으로 사용이 가능했던 이 컨덴서 마이크는 1916년 에드워드 크리스토퍼 웬테 (Edward Christopher Wente)가 개발합니다 . 컨덴서 마이크 이전에 통신을 위해 사용되었던 마이크는 카본 (Carbon) 마이크로 스스로 전압을 발생 시키기에 별도의 앰프 필요없이 수백 킬로미터까지 신호 전달이 가능했지만, 대륙간의 신호 전달은 어려웠습니다. 이를 보안하기 위해 ‘Bell Laboratories’에서 연구하여 개발한 것이 바로 이 컨덴서 마이크 입니다.


컨덴서 마이크의 구조는 매우 혁신적이었습니다. 두개의 진동판을 수평으로 두고, 전면에 있는 진동판은 소리로 진동할 수 있게, 후면의 진동판은 고정으로 두어 전기 신호를 발생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이 전기 신호는 컨덴서 마이크에 연결된 진공관 튜브 앰프에서 증폭되었지요. 성능 또한 놀라웠는데, 두꺼운 쇠로 만들어졌던 처음의 컨덴서 마이크는 6,000Hz까지 거의 고르게 전달할 수 있었고, 이후 얇은 알루미늄 진동판으로 개량된 컨덴서 마이크는 15,000Hz까지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 마이크들은 최대 2,400Hz까지가 한계였던 점을 생각한다면 놀라운 발전이었습니다.



Development of Electrical Recording


컨덴서 마이크의 연구와 함께 전기를 이용한 녹음 (Electrical Recording) 또한 활발히 연구되었습니다. ‘Bell Laboratories’ 이전에도 전기를 이용한 녹음에 관한 연구와 시도는 여러번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1920년 11월, 영국에서 리오넬 게스트 (Linonel Guest)와 호러스 메리만 (Horrace Merriman)이 4개의 카본 마이크를 움직이는 코일에 연결하여 녹음한 일이 있습니다 . 그 당시 축음기 시장의 큰 주축을 맡고 있었던 콜롬비아 그래모폰 사에서 이 녹음을 발표하였지만, 아날로그 녹음에 비해 음질이 매우 떨어졌기에 콜롬비아 그래모폰 사에서도 이 녹음 방식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았고 그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Bell Laboratories’에서는 이러한 녹음에 관해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졌는데, 하비 플레쳐 박사 (Dr. Hervey Fletcher)를 중심으로 조셉 맥스웰 (Joseph P. Maxwell)과 헨리 해리슨 (Henry Harrison)의 두 팀이 연구를 담당하였습니다.


 


Western Electric double-button carbon microphone


전기를 사용한 녹음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연구는 마이크였습니다. 그 중에 ‘Bell Laboratories’는 기존의 카본 마이크를 크게 개량하였습니다. 작은 알맹이의 탄소 (Carobon)를 이용하여 소리의 진동을 전기 신호로 변환할 수 있었던 이 마이크는 별도의 앰프가 필요 없었지만 전압 변속기를 연결해야만 했습니다. ‘Bell Laboratories’는 진동판에서 탄소 알맹이를 분리하여 마이크의 잡음과 고조파 왜곡 그리고 신호의 선명도를 크게 개선한 일명 ‘Western Dobble-botton carbon microphone’을 개발합니다. 이 마이크는 그 당시 라디오 방송에 활발히 사용되었지요.


‘Bell Laboratories’는 전기 녹음에 사용되는 각 장비간의 임피던스 (Impedance)를 일치시키는 연구도 진행되었습니다. 쉽게 말해, 컨덴서 마이크를 통해 아날로그 신호가 전기 신호로 바뀌고, 그 전기 신호가 진공관 튜브 앰프로 들어가 증폭되며, 증폭된 신호가 연결된 커팅 헤드를 움직이게 하는 모든 전기적 흐름의 임피던스를 일치시키는 연구였습니다. 

‘Bell Laboratories’는 일찍이 리 디포레스트 (Lee de Forest)가 발명한 오디온 튜브 (Audion tube) 특허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튜브는 이온 가스로 채운 튜브 방식이었고 ‘Bell Laboratoires’는 연구 끝에 이온 가스가 진공된 튜브에 비해 그 실용성이 떨어짐을 발견하였습니다. 1914년 말에는 ‘Bell Laboratoires’의 엔지니어인 해롤드 아놀드 (Harold Arnold)가 이온 가스가 아닌 진공으로 된 삼극 진공관 튜브 (triode vacuum tube)를 발표하며, 이로 인해 ‘Bell Laboratories’는 처음으로 대륙간 통신 신호 전달에 성공하기도 합니다.


이 진공관 튜브를 이용한 앰프는 1920년도에 각 장비간의 임피던스를 맞추고자 했던 ‘Bell Laboratories’ 연구에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특히, 이 앰프의 주파수 대역은 50Hz ~ 6,000Hz로, 기존의 250Hz ~ 24,00Hz의 주파수 대역을 가지고 있었던 장비에 비해 월등한 성능을 보여주며 좀 더 현실적인 소리의 이미지 표현이 가능했습니다.


전에 웬테가 개발했던 컨덴서 마이크에 관한 개발도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Bell Laboratories’의 대표적인 컨덴서 마이크로는 Model 361과 Model 394이 있는데, Model 361은 중역대 주파수 반응이 극대화 되어 있는 반면 (2.9kHz에서 약 7dB정도 크게 반응), Model 394는 이러한 부분을 포함한 다양한 성능을 개선한 모델입니다 . Model 361은 약 1924년도부터, Model 394는 약 1926 말부터 상용화 되어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 


 


Western Electric 47-A Consenser Microphone


컨덴서 마이크에 관한 여러 연구와 개발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큰 단점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컨덴서 마이크는 진공관 튜브 전기회로 장치 (Vacuum tube circuitry)가 마이크와 가까이 있어야 했습니다. 컨덴서 마이크에서 나오는 전기 신호는 약했고, 높은 임피던스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렇기에 양극화된 전압 공급이 필수였기 때문이죠. 만약, 진공관 튜브 전기회로 장치가 마이크와 가까이 있지 않고, 마이크의 전기 신호가 먼 거리로 전송되야한다면 심한 노이즈가 발생하였습니다. 이러한 부분 또한 개선하고자 했던 ‘Bell Laboratories’는, Model 394과 진공관 튜브 전기회로 장치를 합친 Model 47-A를 개발합니다. 현대에 쓰이고 있는 모든 마이크의 형태를 가진 마이크의 탄생이라고 할 수 있죠.



 

Cutting arm of the rubber line recorder

‘Bell Laboratories’의 엔지니어들은 그 당시 녹음기의 커팅 방식에도 큰 변화를 가져옵니다. 가동 자석형 (moving magnet or moving armature) 커팅 방식을 개발하면서 말이죠. 다시 말해, 마이크에서 변환되어 전달된 전기 신호가 동일한 임피던스를 가지고 있는 앰프를 지나 가동 자석형 커팅 바늘로 전달되면, 소리 신호에 따라 바늘이 움직이며 디스크에 홈을 새기고 녹음을 하는 방식입니다. 이는 기존에 커다란 나팔 형식의 사운드 박스를 대체할만한 개발이었고, 위 언급했던 컨덴서 마이크의 넓은 주파수 대역까지 수용 가능했기에 음질은 비교할 수 없을만큼 뛰어났습니다.

가동 자석형 커팅 바늘을 연구하면서 ‘Bell Laboratories’의 엔지니어들은 큰 음압의 신호는 커팅 바늘을 너무 많이 움직이게 하고 심지어 멈추게 하는 문제를 발견합니다.  또한, 높은 레벨의 저역 주파수나 고역 주파수에 대한 바늘의 반응은 과도했지요. 이를 보안하기 위해 작은 스프링을 커팅 바늘에 달고, 9 인치 길이의 고무로 된 커팅 암 (cutting arm) 을 개발하여 개선합니다. 이러한 커팅 바늘을 가진 장비를 ‘Rubber line recorder’ 라고 부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rubber line reocrder’ 혹은 가동 자석형 커팅 바늘을 이용한 녹음은 많은 제한 사항이 있었습니다. 하나의 커팅 바늘과 암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수 많은 테스트와 실험이 필요했고, 그렇게 나온 장비로도 매번 녹음 때마다 엔지니어의 섬세한 조정과 세팅이 없다면 제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Bell Laboratories’에서 연구되고 개발되었던 마이크와 앰프들, 새로운 커팅 방식을 이용한 녹음 등은 현대의 녹음 방식과 틀의 기본을 다지게 하였지요.  ‘Bell Laboratories’는 이 모든 연구를 조합하여 기존의 실린더 녹음과 같은 어쿠스틱 레코딩 방식을 대체할 ‘Westrex electrical recording system’ 이라는 녹음 방식을 세상에 내놓게 됩니다.

 
 Westrex electrical recording system

‘Bell Laboratories’ 혹은 ‘Western Electric’에서의 여러 연구와 개발로 발표된 녹음 방식, ‘Westrex electrical recording system’은 1924년에 세계적으로 발표됩니다. 그 당시 축음기의 제작과 녹음을 이끌던 콜롬비아 포노그래프 사 (Columbia Phonogragh Company)와 빅터 사 (Victor Talking Machine Company)와의 계약으로 그 이름을 알리죠.

처음부터 콜롬비아 사와 빅터 사가 ‘Westrex electrical recording system’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Westrex electrical recording system’을 개발하였지만 상업적으로 녹음하고 제작하기에는 제한이 많았던 ‘Bell Laboratories’는, ‘Westrex electrical recording system’의 라이센스를 팔기보다 임대하는 방식으로 두 회사와 계약하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라이센스의 계약금은 그 당시 $50,000로, 지금의 약 $600,000에 달하는 금액이었습니다. 또한, 한 장의 레코드 판에 대한 로얄티는 지금의 약 $0.12였죠. 이는 두 회사에게 부담스러운 금액이었습니다. 그러나 라디오의 흥행과 전쟁으로 인한 경기 침체는 두 회사, 특히 콜롬비아 사에게 파업에 가까운 타격을 입히게 되고, 결국 새로운 기술에 관심을 두게 되어 계약을 결정하게 됩니다.

 

Camden Church Studio Stokowski Recording

1925년 2월 3일, 빅터 사는 Camden 15번가에 있는 건물에 ‘Westrex electrical recording system’을 설치하게 됩니다. 2월 26일에 빅터 사와 ‘Bell Laboratories’가 함께한 첫 녹음인, “Miniature Concert”라는 앨범의 녹음이 시작되고. 보컬 그룹의 녹음이었던 이 음반은 1925년 7월에 CVE-31874-3와 CVE-31874-4의 카테고리를 달고 시중에 나오게 됩니다. “C”는 12인치를 뜻하며 “VE”는 ‘Victor Electric’을 뜻했지요. 1925년부터 1931년까지, 이 카테고리 넘버는 ‘Westrex electrical recording system’을 사용한 녹음 음반의 넘버링으로 쓰였습니다.

‘Westrex electrical recording system’을 이용한 첫 오케스트라 녹음은 1925년 4월 29일에 녹음된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 (Leopold Stokowki)와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의 카미유 생사스 (Saint-Saëns)의 “Danse Macabre”음반 녹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 전에 ‘Westrex electrical recording system’ 엔지니어들에 의한 오케스트라 테스트 녹음이 있었고, Westminster Abbey에서 게스트와 메리만이 녹음했던 적이 있었지만 이는 모두 실험적 녹음이었기에 공식적인 오케스트라의 첫 녹음은 아니었지요.

사실 스토코프스키와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는 같은 곡을 1924년에 어쿠스틱 녹음 방식으로 녹음하였습니다. 결과는 좋지 않았죠. 하지만 1925년 ‘Westrex electrical recording system’으로 전기를 이용한 녹음을 할 때에도 어떤 구성과 녹음 방식이 가장 좋은 음질을 만들어 내는지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였습니다. 결국 오케스트라 구성을 크게 바꾸고 (7명의 퍼스트 바이올린, 3명의 세컨드 바이올린,  3명의 비올라 그리고 2명의 첼로 등), 팀파니를 콘트라 바순으로 대체하는 등의 방식을 사용하여 녹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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